빠설2009/06/21 15:12

소녀시대의 새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은 작년 여름부터 들려왔다. 팬들 사이에서는 10월 초라는 상당히 구체적인 발매 시기까지 알려졌고, 타이틀 곡으로는 ABBA의 곡을 샘플링한 '궁극의 팝 멜로디'를 들고 나온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그러나 뮤비 컨셉 촬영까지 마쳤던 새 앨범은 원작자가 곡 사용 허가를 안내주면서 엎어지게 되었다. 소녀시대의 컴백을 기대하던 팬들은 다시 한번 몇 달간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2008년 12월, 소녀시대 미니앨범의 티져 포스터와 티져 뮤비가 연달아 공개되었다. 원더걸스가 <So Hot>과 <Nobody>로 2008년을 평정했고, 브라운아이드걸스나 쥬얼리, 씨야와 같은 여성그룹들 역시 맹활약을 펼쳤다. 걸 그룹이라는 것이 슬슬 식상해질 무렵이었고, 후크 송의 대유행으로 이미 나올 수 있는 형태의 후크 송들이 모두 등장한 상황에서 소녀시대가 또 다시 후크 송을 들고 나온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이 우려를 감출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이 된 소녀시대는, 어찌되었든 좀 더 성숙한 이미지를 들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원더걸스는 그 시도에 성공했기 때문에, 후발 주자 입장에 서게 된 소녀시대의 부담감은 적은 것이 아니었으리라. 처음에 10월에 나올 예정이었던 앨범에 서브 타이틀격으로 느린 템포의 슬픈 곡으로 구상되었던 Gee 역시 급격히 그 방향을 틀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형태로 Gee의 음원이 완성되었던 것은 11월 무렵이라고 알려져있다. 기본적으로 트레이닝 복과 교복 스타일을 변조해 활동했던 싱글과 1집 때 패션과는 다른, 이제 막 발랄한 대학 새내기의 나이가 된 멤버들에 맞추어 미니앨범의 스타일링을 하기 시작했다. 10월 활동에 예정되었던 패션 컨셉에도 그에 따라 변화가 주어졌다.


 뮤비 촬영은 12월 중순이었다. 10~20대 팬들을 주 타겟으로 하는 남성 아이돌과 달리, 여성 아이돌들은 충성스러운 팬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전국민적인 인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순진한 척 하거나, 지나치게 발랄무쌍하거나, 지나치게 섹시한 이미지를 들고 나와서는 안된다. 따라서 소녀시대는 절제된 이미지들을 하나의 곡 속에서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Gee 뮤직비디오는 이 시점에서 소녀시대가 만들어나가야할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화려한 불빛의 쇼 윈도우 너머로 서있는 마네킹들이 보인다. 패션 샵의 소년 직원(샤이니 민호)은 윤아 마네킹을 들어 제 자리로 옮겨 놓는다. 소녀시대 아홉 멤버들이 각자의 포즈로 서있다. 열두시가 되고, 민호는 불을 끄고 가게 밖으로 나서며 쇼윈도우 너머 마네킹들을 둘러본다. 음악이 시작되고, 티파니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탁상형 시계에서 시간이 흐르고, 멤버들은 깨어난다. 뮤직비디오는 전반적으로 세가지 정도의 화면이 교차되면서 진행되는데, 하나는 맨 앞장면 부터 하나의 서사를 가지고 이어지는 화면, 그리고 핫팬츠를 입고 춤추는 화면이다. 멤버들은 각자의 파트마다 민호의 사진을 잠깐씩 수줍게 쳐다보면서 특유의 제스쳐를 보여준다. 아홉 명의 소녀들이 이런저런 패션 아이템들을 가지고 장난 치는 모습은 패션샵의 다양한 컬러에 맞추어 깜찍하고 발랄하게 그려진다.


 아무리 보아도 내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상의를 입고 분홍, 노랑, 초록 핫팬츠를 입고 춤추는 소녀시대의 모습은 지나치게 섹시함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건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조금은 과도할 정도로 허리를 튕기는 안무가 쥬얼리의 그것처럼 아슬아슬한 섹시함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밝고 명랑한 음악과 패션의 건강한 이미지에 중화되었기 때문이다.


 한 차례 후크 부분이 지나가고, 두번째 파트부터는 멤버들이 민호 사진을 쳐다보는 장면이 사라지고 각자 파트에서 거울을 보며 자뻑하거나, 서로를 쳐다보며 예쁜 척하는 일종의 나르시즘적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소년 직원을 짝사랑하는 소녀 마네킹'이었던 소녀시대의 뮤비 컨셉에서 '남자'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소녀들의 풋풋하고 발랄한 첫 사랑을 그렸다는 Gee의 노래 가사에서 유독 그 지칭 대상이 모호한 이유와도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Gee의 가사를 잘 살펴보면 나레이션 첫 부분에 티파니가 '리슨 보이'라고 말하는 것을 제외하면 소녀들이 첫 사랑에 빠진 대상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사에서 이야기하는 '그대'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가사 대부분이 첫사랑에 빠진 자기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원더걸스가 'Nobody nobody But You'라고 호소했던 것과 달리 Gee에서는 사랑에 빠진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 자체가 극히 드물게 등장한다. 가사 전체에서 Gee가 52번 등장하는 것에 비해 이 노래의 유일한 지칭어인 '그대'는 단지 다섯번 등장할 뿐이다. 이 쯤 되면 Gee라는 곡이 공주병 소녀의 자기 만족을 그리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오해도 불러올만 하다.


 클라이맥스 부분을 선명한 독창으로 강조시키는 것은 소녀시대 노래에 자주 등장하는 수법인데, 이 부분을 맡고 있는 유리 파트 부터 세번째 화면이 등장한다. 미니앨범 자켓 화보에 등장하기도 했던 흰 티만 입은 멤버들의 단체 화면이다. 발랄하고 건강했던 이제까지의 이미지와 달리 순백의 청정무구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티져뮤비에서도 사용된 영상이다. 소녀시대의 (남성)팬들은 소녀시대를 무성적/유아적 존재로 설정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뮤직비디오의 이런 화면은 그러한 욕망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장면일 것이다. 벽시계가 울리면 소녀들은 불을 끄고 황급히 제 자리로 돌아가 다시 마네킹으로 변한다. 이때 티파니가 투정을 부리듯 팔을 내리고, 멤버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가게 밖으로 나간다. 이미 짝사랑의 대상인 민호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그리고 민호가 돌아온 자리엔 텅빈 가게와 Gee의 메시지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 뮤비는 '소녀시대'라는 판타지가 어떻게 구성되는 지 온전히 보여준다. 일단 여타 걸그룹들이 보여줄 수 없는 액티브한 군무는 기본이다. 마지막 후렴구에 맞춰 연새적으로 같은 동작을 취하고 마지막엔 점프(효연)까지 보여주는 안무를 한국에서 소녀시대가 아니라면 어떤 걸그룹이 소화할 수 있겠는가? 그뿐 만 아니라 하나의 곡 안에서 소녀시대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교차하여 보여주며 '소녀시대'라는 개성 자체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보통 아이돌 그룹들은 수많은 팬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각 멤버의 캐릭터를 분할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분할된 캐릭터들은 각기의 개인활동을 통해서 극도화되고, 이럴 경우 그룹활동은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를 들고 나와 그룹의 브랜드 네임을 유지하는 기능에 그치게 된다. 다른 어디도 아닌 바로 SM이 신화를 시작으로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이를 타 기획사들에서 벤치마킹하여 일반화한 전략이 되었다. 무려 멤버 수가 열 세명이나 되는 슈퍼주니어는 이러한 전략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슈퍼주니어의 신곡 <Sorry Sorry>가 뮤비 내내 후까시로 일관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 뮤비에서는 무려 신동도 후까시를 잡는다!) 그러나 이러한 일관된 이미지 이후에 바로 다양한 유닛활동이나 개인 활동을 통해 그룹 이미지보다 멤버 개개의 개성을 강조하게 된다. 물론 이는 급속히 변화하는 대중문화 시장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행보이겠지만,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의 아이돌그룹들이 가졌던 일종의 '아우라'를 그리워하는 보수적인 아이돌팬들에게는 조금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예전보다 요즘의 아이돌들이 보여주는 보컬로서의 역량이나 댄스 능력은 월등한 편이고, 대중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탁월한 레벨의 곡들이 아이돌 그룹을 통해 선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정말로 '아이돌'로서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소녀시대의 미니앨범 <Gee>의 히트는 단순히 모두에게 잘 들리고 잘 따라부를 수 있는 '국민 가요'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전통적 아이돌 상의 복구 - 이를테면 90년대 중후반 H.O.T, 젝스키스, SES, 핑클이 그랬던 것 처럼 -를 향한 선언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최일선에는 그 뮤비가 보여주었던 '소녀시대'라는 이미지가 서있다. 소녀시대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들을 마음껏 보여주면서 그 자체로 반짝 반짝 눈이 부신 아이돌 그룹으로 성장하고, 그만큼 충성스러운 팬들을 확보하게 된 소녀시대는 한편으로 대중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 역시 노출하게 되었다.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대중'들의 폭넓은 인정아래 '팬'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필요로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대중들의 인정 없이는 컬트적인 인기 이상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반대로 열성적인 다수의 팬들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저 인기 가수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대중들의 인정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많은 결점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아이돌들이 자신의 결점과 약점 같은 것을 대중에게는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종의 주술을 통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소녀시대의 경우 발랄하고, 귀엽고, 건강하고, 매력적인 소녀들의 이미지를 깨지 않고 끝까지 가져가는, 그 이미지를 어떻게 말하자면 '신비성'의 수준으로 지켜나가야만 그 것이 지속적으로 유지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아이돌들과 달리 - 이를테면 심은하가 치명적인 동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우상으로 남을 수 있었던 - 방송 매체를 통한 과도한 노출이나 인터넷을 통한 루머의 빠른 유포는 이것을 어렵게 만든다. 소녀시대도 3개월이라는 활동 기간 동안에 이런저런 구설수에 끊임없이 시달려야했다. (그리고 이 것은 아마도 소녀시대가 활동할 때 마다 해묵은 떡밥으로 되살아 날 것이다.)


 소녀시대는 세 달 동안의 미니앨범 활동을 접고 2집 음반을 위한 휴식기에 들어갔다. 소녀시대는 1집 활동을 통해 아이돌의 명가 SM 소속의 '주목할만한 아이돌 그룹'으로 그 브랜드 가치를 인정 받기는 했으나, 일반 대중들에게는 멤버 이름들 조차 다 알려지지 못했던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1집 활동 중에 몇몇 멤버들이 높은 인기를 모았고, 1집활동이 끝난 후에도 태연과 윤아는 각각 OST와 드라마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그 것이 '소녀시대'의 성공이었다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Gee 활동은 그야말로 '소녀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고, (그 공정성에 대해서 큰 의문을 품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를 휩쓸고, 이전의 기록을 갈아치웠을 뿐만 아니라, 10만장 가까운 음반 판매고와 100만 건 이상의 BGM 판매를 기록했다. 한 사람의 소녀시대 팬으로써, 그리고 한국 가요계에 더 좋고 다양한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전통적인 '아이돌' 개념을 되살릴 수 있을 것 처럼 보이는 유력한 그룹인 소녀시대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대중음악시장을 이끌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소녀시대가 진정한 아이돌로 오래 사랑 받기에는, 그리고 개개 멤버들이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그녀들이 가야할 길이 아직 멀게 느껴진다. 여름으로 예정된 2집을 기다리면서, 나는 그녀들이 - 그리고 그 어느 곳보다도 영악하면서도 도전적인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 보여줄 모습이 또 다시 새롭기를 기대한다. 그녀들의 구호가 "지금은 소녀시대!"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소녀시대, 영원히 소녀시대!"까지 끝없이 울려퍼질 수 있기를..

2009/06/21 15:12 2009/06/21 15:12
Posted by 프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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