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 금욕이라는 것도 결국 내부지향이 아니라 타인지향의 것이다. 우리의 세속적 금욕이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인정을 쟁취하고 싶다는 욕망에 내몰려있기 때문이다. 근대적 자아라는 것은 전통이나 타인을 넘어서 자율적인 뭔가를 구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소비 사회라는 현실에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불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 - 이를테면 스타일이나, 절대성을 추구하는 것들이 - 가 시도된다.
이때 자율적 무언가를 추구하는 이상과 비루한 실제 사이의 갈등에서 결국 패배하고야 마는 이상은 연애를 (가상의) 마지막 보루로 삼게 된다. 연애라는 것은 일단 나를 희생시키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실제의 나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세속적 금욕은 당장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욕구를 연장 시킨다. (혹은 욕구를 채울 권리를 내면적으로, 무의식 적으로 축적한다.) 이것이 바로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순애보'이다. 그리고 이와 대립항으로 연애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는 의식 역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세속적 금욕'을 내면화하면서 지켜낸 나의 (육체적/정신적 순결)인데, 그냥 쉽게 흘레붙기엔 뭔가 아깝다, 는 느낌이 연애의 부산물(스펙, 돈, 자동차...) 등을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Leave your greetings.
육체적 순결을 지켜낸 여성이라고 한정한다면 딱 들어맞는데, 그 외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세속적 금욕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에는(특히 요즘...) 왜 그런 것인지. 순결이라는 단어가 참 낯서네요.
2009/07/29 22:29 [ Permalink : Modify/Delete : Reply ]저는 '정신적 순결'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환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모든 사랑은 사실 '첫 사랑' 아니던가요. 더이상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그 것은 '연애'가 되는 것 같습니다.
2009/07/30 20:27 [ Permalink : Modify/Delete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