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설2009/07/22 14:53

1.

 얼마전 앨범이 제 손아귀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처음 뮤비를 본 순간부터 이번 앨범에 대한 입장 정리를 해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 충격은 없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소원을 말해봐'의 가사는 뭐랄까, 소녀시대 남성팬들이 가지고 있던 미묘한 불편함을 밖으로 꺼내놓은 듯한 느낌이라.. 이를테면 이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물없이 귀여워 해주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만약 이 아이가 이성으로 다가오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은밀히 홀로 상상하며 즐거워하던 귀여운 후배 여자애가 어느날 갑자기 나를 대놓고 유혹하는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당혹감. 너의 판타지를 숨김없이 말해보라니, 다름 아닌 우리 탱구가!!!!!!!


뭐 이제 음원이 공개된지도 3주가 넘어서 처음의 당황스러웠던 느낌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다음 정규앨범에서 도대체 SM이 소녀들에게 무슨 짓을 시킬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아마 제 생각대로라면 지금 이상의 무언가는 시도하지 않겠지만..


2.

 두번째 미니앨범을 낼 때 SM측에서도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소녀시대는 작년 10월 경에 정규 2집을 낼 예정이었고, Gee 역시 이 앨범에 수록될 곡이었죠. 그런데 그 앨범이 엎어지면서, 정규 앨범을 올 해 전반기로 미루자니 연말 가요 대상이 걸리고, 그렇다고 후반기에 내자면 공백기간이 너무 길어지게 되죠. 이런 상황에서 정규 앨범을 후반기에 내되, 미니앨범을 통해 공백기간을 줄여보자는 심산에서 Gee 미니앨범을 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미니앨범으로 대박을 내겠다는 생각보다는, 09년 초에 미니 앨범 한 장, 여름에 또 미니 앨범 한장을 내면서 인기를 유지해가다가, 09년 말에 정규 앨범을 내면서 09년 가요계를 결산해버리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Gee'가 생각보다 너무 큰 인기를 얻고, 또 활동이 생각보다 오래 진행되게 되면서 소녀시대가 두번째 미니앨범을 낼 시기도 애매해졌고, 이미지변신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 것 같습니다. '소.말'이 밀리터리 + 섹시 룩이라는 무리한 컨셉을 선택하게 된 것도 무언가 Gee의 이미지를 돌파해야한다는 부담감에서 시도된게 아닐까요.


 사실 두번째 미니앨범은 '소.말'과 다른 수록곡들 사이에 갭이 너무 심합니다. 언제나처럼 '소녀'다운 러블리송 'Etude'가 포함되었고, 가볍고 트렌디한 BGM 스타일 일렉트로닉 팝 '여자친구', 전형적인 SM 스타일 댄스 팝 '남자친구'가 이어지면서 '그대를 부르면' - 'Dear Mom' 같은 순수하고 어린 소녀 이미지를 강조하는 곡의 계보를 잇는 '동화'로 마무리됩니다. 물론 제시카와 온유의 듀엣곡인 '1년後'가 있지만 이건 SM팬들을 위한 서비스 성격이 크구요. '소.말'을 제외한다면 모든 곡들이 이전 앨범들과 유사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Etude'쪽이 타이틀로 적합해 보이는데, 결국 '소.말'을 타이틀로 하고 앨범 컨셉 자체를 그렇게 잡게 된 것은 소녀시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한다는 SM의 조바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1집 정규 앨범이 이승철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안전한 선택을 했던 것 처럼 소녀시대 2집 역시 정규앨범인 만큼 과도한 위험을 무릅쓸 수 없겠죠. 따라서 두번째 미니앨범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겠지만, 글쎄요. 현재 시장의 반응이 뜨겁긴 하지만 여전히 예능과 기타 방송을 통해 성숙함보다는 발랄하고 건강한 소녀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시도가 과연 성공할지는 의심스럽습니다.

3.

 이번 앨범에서는 타이틀 곡과 '남자친구'가 외국곡이죠. SM은 이미 보아나 SES 시절부터 외국곡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재미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최근 샤이니의 '줄리엣'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러나 예전만큼 외국 곡들이 한국에서 잘 통할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에요. 예전에야 한국 대중 음악 시장이 워낙 영미/일본에 비해 트렌드에서 뒤쳐진 감이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도 10년이 넘는 아이돌/댄스 시대를 거치면서 쌓아온 댄스/팝 장르에 대한 노하우가 적지 않고, 게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일렉트로니카의 기법을 활용한 세련된 댄스 팝이 많아졌거든요. 게다가 이미 작년 한 해 동안 음악 소비자들은 이러한 공식으로 제작된 후크 송들에 길들여진 상태에요. 일례로 브아걸이 다른 걸그룹들에 비해 브랜드 파워가 현격히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어쩌다'나 'My Style' 같은 좋은 댄스 팝을 선별하여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것을 생각해봅시다. 브아걸에게 영광의 시대를 열어준 'L.O.V.E'가 비록 외국곡을 샘플링했지만, 오히려 편곡 시 한국 댄스음악의 공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열광적인 반응을 가져왔거든요. 한국 댄스 음악의 흐름이 이렇게 바뀌는 것에 비해, 오히려 SM은 이런 방식과 조금 거리를 둔 곡들로 승부를 보거나(동방신기의 '미로틱')아니면 그 트렌드를 극한으로 끌고가는 방식으로(소녀시대 Gee) 승부를 보고 있습니다. 전자는 기존의 SM 월드를 굳건히 유지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SM월드로 새로운 소비자들을 포섭해나가는 방법이겠죠. 이는 아마 각각 여성 팬과 남성 팬이라는 다른 성격의 타겟을 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SM은 이제까지 이렇다할 히트곡이 없었던 슈퍼주니어마저도 장기간 차트를 접수하게 만들면서 정말로 SM 왕국을 건설하고 말았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첫 앨범이 등장한게 바로 소녀시대의 두번째 미니앨범입니다. 그런데 두번째 미니앨범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그 정체성이 애매합니다. 'gee'처럼 국민 가요를 내기에는 타이틀 곡이 너무 명확하게 기존 팬들을 타겟으로 하고 있고, 기존 팬들의 입장에서 - 특히 남성 팬들 입장에서 - '소.말'의 컨셉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거든요. 'gee'니까 남성(특히 삼촌)팬들이 팬질을 할 수 있었지, '소.말' 같은 섹시 컨셉은.. 당혹스럽죠. 어떤 컨셉을 하고 나오든지 충성을 유지하는 여성 팬들과 달리 남성 팬들은 이미지 변신에 따른 이탈 현상이 유독 크기도 하구요. 혹 곡이 정말로 훌륭해서 음악 팬들의 지지를 얻기라도 한다면 모를까...(동방신기는 이를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말'은 정말 앞날을 종잡을 수 없는 상황 같습니다.


4.

 'Gee'의 대히트를 이어가야한다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소녀시대는 그럭저럭 순항하고 있긴 합니다. 다만 아시운 점은 모처럼 이미지 변신을 위해 무리수를 두었으면서도, 여전히 기존 소녀시대의 이미지로 돈을 뽑아내려는 기획사의 방싟입니다. '소.말'의 정식 음원은 앞부분과 뒷부분에 소녀들이 웃고 떠드는 짧은 skit 부분이 있는데, 이는 어떻게든 이미지 변신을 꾀하면서도 기존의 발랄한 이미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다는 증거죠. 앞부분 Skit에서 소녀다운 이미지를 깔다가, 노래가 나오는 순간 새로운 Fantasy를 느끼게해주고, 다시 소녀로 돌아간다는 그런..


 또 다른 아쉬움은 뮤직비디오입니다. Gee 뮤비가 남자 캐릭터를 등장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시대'라는 자기 완결적 판타지를 그려냈던 것 과 달리 '소.말'의 뮤비는 (마치 에로게와 같이!) 관음증적 시선을 적극적으로 채택하며 '나와 소녀시대'라는 관계를 보여줍니다. '나'라는 시선이 등장하면서 각 멤버들은 (또다시, 마치 에로게 처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듯 성격화되구요. 멤버들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공간에서(이 공간도 마치 모텔과 클럽 같은 느낌입니다! 뭥미.) '나'와 함께하는 것이나, 서현이 날개를 달고 춤을 춘다던가 수영이 상당히 보이쉬한 캐릭터로 변신했다던가 하는 것들이 뮤비에서 시도된 멤버들의 캐릭터라이징을 입증합니다. 이미 많은 소시팬들이 뮤비의 이러한 설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데, 뮤직비디오에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팬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은밀한 즐거움을 바깥으로 끄집에내는 행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많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소녀시대의 앨범 자체는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이전 앨범과 달리 전 곡 모두 고르게 뛰어난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곡 구성과 전개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던 순수 이미지 9명 떼창 발라드 곡을 듀엣으로 대체하고, 황성제의 능력이 빛나는 '동화'라는 곡을 배치한 점은 칭찬하고 싶어요. 백코러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화'는 9명이라는 숫자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곡 자체도 사운드가 꽉 찬 훌륭한 곡이에요.


 다음 정규 앨범에 대해 SM에 한가지 제안하자면, 타이틀 곡은 '소녀시대'나 '힘내'를 넘어 좀더 롹킹한 노래로 나가는게 어떤가 하는 점입니다. SM 주력 작곡가 중 하나인 Kenzie가 원래 락 음악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알려져있죠. 게다가 보통 SM 가수들이 알앤비 스타일 보컬이 대부분인데, 소녀시대의 메인보컬인 태연은 락에 어울리는 보이스를 가지고 있거든요. 써니나 수영 역시 마찬가지기도 하고.. 한번쯤 더 강렬한 곡으로 팬들을 놀라게 해주었으면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긴, 얼마전에 트랙스의 정모군이 인터뷰에서 SM에서 가장 락킹한 그룹이 소녀시대라고 하긴 하더군요. 크크. 다음 앨범이 기다려집니다.

2009/07/22 14:53 2009/07/22 14:53
Posted by 프리스티

Trackback URL : http://www.eesoul.net/tc/freesty/trackback/18

Leave your greet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