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된 일로 기억하는데, 신문에서 '가봉의 독재자 봉고 대통령'의 사망 기사를 보고 떠올렸던 단상.
이제는 정치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한 때 유머러스한 앵커 에피소드 모음집을 내기도 했던 이계진이 자신의 책에서 소개한 일화인데, 박통 시절에 바로 이 가봉의 봉고 대통령이 방한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봉고 대통령의 '방한 생방송'(지금은 미국 대통령이나 일본 총리, 영국 여왕이 와야 할만한 일이지만, 아무튼 그 시절에는 카퍼레이드도 하고 그랬다.)을 생중계하게 된 앵커가 긴장한 나머지 '가봉의 봉고 대통령'을 '봉고의 가봉 대통령'이라고 실수해서 전 스튜디오가 긴장에 빠진 일이 있었다고... 이때 봉고 대통령의 방한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봉고 승합차'의 이름이 생겨났다.
지금은 아프리카 모 국가 수반이 방한을 하는 것은 그리 큰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세 차례나 한국을 찾았던 봉고 대통령은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 중에서도 한국과 큰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다. 재밌는 것은 박통 시절 국민들을 동원해가면서 까지 봉고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했다는 점. 앵커가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한국과 별 인연이 없었던 가봉의 봉고 대통령을 왜 그렇게 국가적으로 환영했던 것인가?
70년대 중반, 이미 베트남 전쟁 등으로 국제 사회, 특히 아프리카-서남아시아 비동맹 국가들에게 대외적 신뢰를 잃었던 한국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북한과 치열한 외교적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많은 비동맹 국가들이 불안정한 군부 독재 상태였고, 이미 북한의 외교적 영향력 하에 들어가있던 시점이었다. 이때 가봉 봉고 대통령은 이미 서방 세계와 긴밀한 연결을 통해 안정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한 상태였고, 그만큼 북한 보다는 남한에 친숙할 수 밖에 없던 상태였다.
한국 입장에서는 대외적으로 비동맹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위해 봉고 대통령이라는 파트너를 끌여들이고 싶었고, 대내적으로 해외 지도자들과의 긴밀한 유대를 과시해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입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유신 독재가 격심한 반발을 일으키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의도는 더욱 명확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가봉은 박정희 정부의 롤 모델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독재를 통해 경제 발전에 성공했던 국가였던 만큼, 어떻게든 박통과 '봉통'은 연결 고리를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봉통'의 프렌치 커넥션이 장기 독재의 원천이 되었던 것 역시 한미 관계를 연상케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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