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의 주인공은 현상현 신부다. 제대로 읽어도 현상현, 거꾸로 읽어도 현상현.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부터 이런 식으로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뜻이 되는 문구들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현상현 신부의 이름은 그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뱀파이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참고로 또 다른 주인공인 태주의 이름은 박쥐의 원작 소설인 테레즈 라캥에서 따왔다고. 테레즈 = 태주. 라 여사는 '라캥'에서 빌렸다고 한다. 라 여사, 강우, 태주가 살고 있는 행복 한복집. 패륜과 살인의 주요 배경이 되는 이 가게는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역설적인 이름을 쓰고 있다. 행복(한) 복집
- 박찬욱 감독은 유난히 신체 훼손의 이미지를 즐긴다. 그러나 박찬욱의 그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나 프레디 로드리게스처럼 신체 훼손의 '키치적 미학'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신체 훼손 본연의 폭력/잔혹의 느낌을 극대화 한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등에서 등장하는 잔혹 장면들을 떠올려 보자. 그러나 박쥐는 이전 작품들 보다 본격적인 신체훼손 장면은 적은 편이다. 피만 빨아 먹는 우아하고 귀족적인 이미지의 흡혈귀를 소재로 쓰고 있기 때문에? 박쥐에서 가장 인상적인 신체 훼손 장면은 햇빛을 받아 전신이 재로 변해버린 태주의 발목이 뚝, 떨어지는 장면이다. 이제까지의 뱀파이어물을 통틀어서라도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로 꼽힐 만한 이 장면은, 장르물을 요리하는 박찬욱의 솜씨가 그저 웰-메이드라는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친절한 금자씨의 인상적인 오프닝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 처럼 박찬욱은 '피'의 이미지 역시 자주 활용한다. 박쥐는 뱀파이어물인 만큼 피의 이미지를 그 어느 때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실험을 자원한 상현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피리를 불다가 피를 토하고, 피리 구멍 사이로 피가 왈칵 쏟아지는 장면은 인상적인 각혈 장면이다.
- 상현과 태주, 라여사의 기묘한 동거는 자연스럽게 프로이트를 떠올리게 하는데,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도 사제로서의 도덕과 양심에 따라 스스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상현이지만, 본능적 충동에 솔직한 태주(이드)에게 끌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에고). 태주의 폭주에 갈팡질팡하는 상현이지만, 무력한 라 여사의 시선(슈퍼에고)에 가까스로 스스로를 붙잡게 된다. 전신이 마비된 라 여사를 앞에 두고 거리낌 없이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태주가 오아시스 멤버들을 살육하자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태주를 저지하는 상현, 자동차 안에 라 여사를 앉혀두고 태주와 함께 산화하는 상현. (근데 라여사는 어떻게 되는 걸까? 태주의 피를 섭취한 라여사가 뱀파이어가 된 박쥐 2가 나오려나?)
- 일반적인 '종교영화'로 보기에는 박쥐에서 드러나는 종교적 고민은 너무나 나이브해 보인다. 신앙과 인간적 욕망의 갈등은 수없이 많은 종교 영화에서 변주되온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사제라는 설정 자체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더욱 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로 박찬욱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 어떤 인간 보다도 욕망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의 뱀파이어(들)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사랑과 욕망은 얼마나 거리가 있는 것일까?
행복한(복)집에 같혀 살아온 태주에게 갑자기 나타난 상현은 처음에는 단지 욕망을 배출해낼 탈출구에 불과했다. 상현에게도 태주는 그저 욕망의 대상(그 것이 성적 욕망이든, 아니면 휴머니즘적 만족이든)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욕망의 구속구(라 여사, 강우)들을 떨쳐낸 태주가 다른 남자와 다섯 번 섹스하고도 무언가 결여를 느끼면서 터덜터덜 걸어올 때, 태주의 폭주를 견디지 못한 상현이 태주를 목졸라 '죽일' 때(사랑은 자신이 자기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들었던 것들 - 이를테면, 상현이 끝까지 포기하려 하지 않았던 휴머니즘? - 에 대한 적극적 파괴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함께 죽음을 택할 때 둘의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로맨스로 전환된다.
박찬욱은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면서 상업적 성과나 예술성에 대한 지나친 중압감 없이 시도한 첫 영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복수 '삼부작'이라는 명칭은 얼마나 부담감을 안겨주는가!) 정신병자들의 이상한 사랑을 다룬 '멜로'영화인 사이보그..가 그의 '첫' 영화라면, 박쥐 역시 그 연장선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박쥐는 범죄/종교/멜로/판타지라는 다양한 장르를 변주하고 있지만, 그 서사 구조가 유난히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은 바로 멜로물의 그 것이다. (사실, 박쥐는 얼마나 헐거운 구조로 이루어진 영화인가? 그 것이 의도적이라면?) 세상에서 배제된 단 둘이 맨 몸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새벽을 맞이하는 영화인 사이보그.. 와, 세상을 배제시켜버린 단 둘이서 죽음을 맞이하는 아침을 그린 영화인 박쥐는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는지!




Leave your greetings.
밖에 나온 주제에 아직도 <박쥐>를 못 보고 있는 저로서는, 흑흑. 여간 인상적인 것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박감독이 분방하게 열어두고 있다는 점이 아닐지요.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찾아 봐야겠습니다.
2009/06/01 13:40 [ Permalink : Modify/Delete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