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저와 친구가 유럽의 정치적, 역사적 유산에 대한 재평가와 또 그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아직까지 학술적으로 제대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동양사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특히 정치철학의 영역에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담론들은 주로 유럽의 역사적 상황을 그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관심을 동양사쪽에도 확장하여 연구를 진행해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분과 학문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한국에서는 '동양'은 동양사학과, 동양철학과, 동양어문학과 정도를 제외하면 이론적 접근이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물론 그 틀안에서도 서구의 이론을 적용하여 연구를 해나가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90년대 이후 동양사 관련 논문에서도 월러스틴이나 푸코 등등의 이름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지 그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학, 철학, 정치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동양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편입시켜야하지않느냐는 주장이었죠.
동양사를 전공하는 입장의 선배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는데, 골자는 어떻게 보면 그 주장도 '서양 학문'의 관점에서 동양을 해석하고자 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입장이 아니냐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애초에 '근대 학문'이라는 것이 서구적 전통에서 생겨난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학과는 전근대부터 진행되었던 전통적인 '學'으로 나름의 연구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것으로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 나가야할 것이지 단지 서구적 관점에로 동양사를 연구해 나간다는 것은 너무 기계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였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입장에 서있긴 했지만, 공통적으로 모두가 동감했던 것은 이른바 동양학과의 연구 방법론이 정체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동양사의 경우, 연구의 목적이라는 것부터가 보통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 혹은 '근대라는 기준에 비추어 그 이전의 동양 역사가 어떤 발전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는지'를 찾아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양사의 연구들이 다른 분과학문들과의 이론적 연계 속에서 '근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에 비하여 아직 나아가야할 길이 멀다고 하겠죠.
저와 제 친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재 연구되고 있는 '근대'에 대한 이론 틀을 활용하여 지금 우리가 서있는 동아시아 - 좁게 말하면 한, 중, 일 3국 - 라는 공간에 대해 더 고민해볼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현대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립될 수 있도록 했던 중요한 요인이었던 '만주국'에 대해 공부를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구요.
우선 만주국은 일본의 1930년대 경제 기적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던 곳입니다. 일본제국은 만주국으로부터 원자재의 상당량을 충당했고, 각종 중공업/화학 단지를 건설하여 이후 태평양전쟁 수행을 가능케 만든 '엔 블록'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주국이라는 신생 국가를 기초부터 만들어 나가면서 쌓았던 노하우들은 만주국 관료 출신인 기시 노부스케 수상을 중심으로 전후 일본의 재부흥 시나리오에 그대로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패전 후 일본이 만주에 남겨놓았던 경제적 유산들은 중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했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계산에 따르면, 일본이 남겨두었던 만주 지역의 경제력은 1950년대 중국 총생산의 14%, 공장 생산의 33%, 철도 수송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로는 45%에 달했다고 합니다. 만주국은 중국이 요즘처럼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게 했던 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죠.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중국에서 벌어졌던 국공 내전은 만주에서 그 승패가 갈렸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임호가 이끄는 홍군 부대가 만주에서 이뤄낸 결정적 승리들은 이후 대륙의 전투에서도 도미노 효과를 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에게 만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로 인해 토지를 잃게된 많은 농민들이 만주로 흘러갔습니다. 총독부 치하에서 피지배 민족으로 성공하기 힘들었던 조선 엘리트들은 만주국 정부에 봉사하거나, 그 적대자가 됨으로써(독립군)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광복 이후 남북한의 지도층을 형성하게 되구요. 북한 권력의 핵심은 만주국의 소탕 작전에도 불구하고 끝내 살아남았던 한만국경의 게릴라 출신들입니다. (이른바 빨치산 투쟁 세대) 남한의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국 군관 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만주국군 장교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많은 만주국 출신 인사들이 건국 이래 한국 군부에 자리 잡으면서 군부 독재 시기 한국의 근대화 프로젝트를 이끌게 됩니다. (만주국의 경제 개발 계획과 남한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보통 '일제의 괴뢰국' 이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제한된 인식 속에서는 왜 조선과 대만을 직접 통치했던 일본이 유독 만주에 대해서는 만주국이라는 독립국가를 세워놓고 조종해야했는지, 당시 만주국이 표상했던 가치들이 이후 한중일의 지적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만주국이라는 국가가 이후 동아시아 삼국의 국가 체제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기 어렵죠.
마침 만주국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작품들(<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다찌마와 리>, <밤은 노래한다> 등)이 한창 인기를 모으고 지나간 시점에서 우리는 만주국에 대한 얄팍한 인식에서 벗어나, 만주국을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를 탐구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만주국과 국가 형성에 대해 잘 쓰여진 안내서인 한석정 교수의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 괴뢰국의 국가효과 1932~1936>을 텍스트로 세미나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세미나를 통한 공부를 공유하는 장이자, 저와 여러분이 만주, 만주국과 '국가라는 괴물'에 대하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단초로 쓰여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칼럼을 통하여 책마을 주민들 중 군 생활이라는 퀘스트를 마친 후 앞으로 함께 공부해 나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Leave your greetings.
흐흐, 잘 먹겠습니다?
2009/06/22 01:08 [ Permalink : Modify/Delete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