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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모든 것을 다 아는 바보: 김경욱의-단편을-읽다가에 달린 최근 댓글/트랙백 목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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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 type="html">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포용해야 한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버리고 자기 인생을 탐구하는 데 바쳐야 한다.</subtitle>
  <updated>2009-07-15T17:31:26+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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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김민규님의 댓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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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김민규)</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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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6-22T01:18:18+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이 글은 문득 전에 본 적이 있었던 듯도 하네요. 방주 맞죠?

&#039;신상&#039;을 예찬하는 서인영을 겹쳐 보게 된다는 표현은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네요. 그래요, 문학 이전에 작가가 존재하는 시대이고, 확실히 그러한 브랜드적 가치가 구축되며 하나의 &#039;상품&#039;이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궁극적으로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하나의 장치로 기능한다는 긍정적인 기대를 내포한다고 이야기하면, 너무 과도한 것일까요?

상품은 결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맥락 안에 존재하며 재해석되고 소비자에 의해서 심지어는 가공되지요. 이러한 요청들은 수요를 형성하며 공급을 견인합니다. 여기서의 &#039;상품&#039;이란 결코 자본적 접근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보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시도하며 장으로 나아올 수 있는 물적 토대 그 자체를 이르고자 함일 뿐이지요.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문학의 중흥을 이야기하고, 꿈꾸고자 한다면, 수용자 입장에서의 효용을 당연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대중적 어필을 감안해야만 할겁니다. 결국 인간은 외적 기표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요. 전략적으로 적당한 소재들을 무난하게 버무려 두루치기를 해 놓고 적당히 평론가의 평을 얹어 코엘료식으로 &#039;팔아먹는&#039; 것에는 명백히 반대입니다만, 그러한 세련미의 추구가 일정부분 문학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고 보거든요.

할 수만 있다면, 그러한 마케팅의 영역과 기의적 깊이의 고민을 분리해서 특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그러자면 출판사의 상업자본화는 필연적일 것이고, 줄타기가 반드시 발생할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 자체로 비판할 수 있는 일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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