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2009/09/13 19:09

1. 외국인 노동자는 돌아가라!

- 박재범에 대한 비난 여론 중 대표적인 멘트가 바로 '외국인 노동자는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쉽게 알아 챌 수 있듯이 일단  '외국인 노동자' 전반에 대한 혐오감이 섞인 말인데, 그 대상이 박재범이라는게 재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꽤나 양식 있는 척 하는 커뮤니티나 블로그들에서도 이런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서 꽤 놀라웠는데, 사실 이 것은 다음과 같은 속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한국 와서 돈 벌어서 자기네 나라로 보내고('국부'를 자신의 이익과 동일시 하는 심리),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약자 위치에 놓여있는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을 대놓고 욕하기엔 남들 보기에 껄끄러웠기 때문에 이런 혐오증을 드러내지 못했는데 마침 마음 놓고 욕해도 되는 박재범(연예인이라는 사회적 '강자', 쉴드 쳐주는 '빠순이'와 JYP라는 '빽'을 가졌다, 게다가 불량한 과거가 있고 나라 욕했다는 개념 없는 놈)이 나타났으니 억눌린 혐오감을 표출해보자!"

 이런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닌게(물론 당연히 동조는 할 수 없지만) 이러한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 사회적 불만이 팽배한 젊은 세대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독일 네오나치나 러시아 스킨헤드 등의 사례를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이 박재범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희극이면서, 또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박재범을 욕하는 사람들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박재범이 실제로는 '외국인 노동자'처럼 비하와 무시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적 강자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사실 박재범은 정말로 말그대로 '외국인 노동자'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인기 전성기의 아이돌 그룹 투피엠의 리더인 박재범이 '외국인 노동자'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하나 하나 따져보겠다. 왜 박재범이 외국인 노동자인지를.


 이번 일이 터진 바로 그 주, 박재범은 <상상 플러스>에서 아직도 돈 한 푼 시애틀로 보내지 못했다고, 그러니까 돈 좀 벌어야한다고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것은 아마 '우스갯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박재범은 3~4년 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쳤고, 이제 겨우 데뷔 1년이 넘은 아이돌이다. 'JYP연습생'이라는 것은 뭔가 '있어 보이는' 타이틀이지만, 실은 언제 데뷔할지 모르는 시간을 보내며 연습에 매진해야하는 신분이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전속 계약'을 맺지 않은 신분인 기획사 연습생은 개인 활동을 통한 실적이 있지 않고서야 기획사로부터 돈 한 푼 받지 못하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빈곤한 상태라는 것이다. 박재범이 연습생 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 팬이 아닌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가족과 떨어진 이역만리 한국에서 거주 비용이나 생활비와 같은 것들을 자가 부담으로 버텨야했을 것이다. (비슷한 사정의 연습생이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적어도 숙소 정도는 기획사에서 제공해주는 줄 알았다!) 그런 고난의 시절을 보낸 후에야, 그는 아이돌 그룹 멤버로 데뷔할 수 있었고, 그 후에야 드디어 수입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데뷔를 했다고 해서, 또 빠른 시일 내에 인기 전성의 아이돌 그룹으로 성장했다고 해서 바로 돈이 굴러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이미 동방신기 사건의 사례를 통해 알려졌고, 또 아이돌 팬들이라면 자주 줏어들었듯이 이들의 생활비나 전속 스탭 고용비 등은 대부분 기획사가 아닌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부담해야한다. (기획사에서 수익 분배 시 이런 비용을 공제한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기획사 - 아이돌 간의 불합리한 수익 분배 구조가 가지는 문제도 있다. 행사를 한번 뛰면 수입을 반반으로 나눈다고 가정하면, 이를 아이돌 그룹 멤버 수에 맞추어 다시 나누어가진다. 동방신기 같은 경우 방송 출연료도 '고정' 코너가 아니라면 기획사가 거의 다 먹는 계약 조건이었는데, 투피엠이 어땠을지는 몰라도 국내 최고 그룹인 동방신기에 비해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했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재범이 방송에서 이야기한대로, "한 푼도 시애틀로 보내지 못했다"라는 것은 아마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재범 뿐 아니라 전체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 '노동자'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박재범은 일단 외국인 '노동자'인 것이다. 지금 재범의 상황은, 말하자면 몇 년간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도제로 일해서(연습생) 이제 겨우 장인으로 인정 받은 상황에서(데뷔) 1년 만에 길드(기획사)에서 쫓겨나 도시 밖으로 추방된(미국 행)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 외국인 노동자에서 '노동자'를 봤으니 이제 '외국인'을 볼 차례다. 많은 이들이 유승준 사건과 겹쳐 보고 있는데, 유승준과 박재범 모두 한국 내셔널리즘의 역린이라고 할 수 있는 군대 문제와 한국 비하라는 것을 건드렸고, 모두 교포 출신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가진다. 네이션=스테이트는 '민족(언어/문화/생활 공동체)'이라는 내적 국경과 실체적 국가의 외적 국경이 일치되면서 성립된다. 따라서 생활권이나 문화도 크게 다르고, 국가의 외적 국경에 포괄되지 않는 '교포'(특히 2,3세들)들은 어찌 보면 이 '네이션'에서 배제된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으로 불리는 한인 교포들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들은 어디까지나 '성공한 사람(민족의 기상을 널리 떨친?)'들에 한정된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교포'들이 가지는 의미는 마치 '멀리 떨어져, 존재만 알고 지내는 배다른 형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성공하면 우리 가족. 실패하면 남남.

 연예계, 특히 아이돌 그룹은 다른 직업군에 비하여 유독 '교포' 출신 비율이 높은 직종이다. 알다시피 아이돌 산업은 그 초창기부터 해외파 멤버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해외파'라는 이미지가 가지는 자유롭고 새로운 느낌이 주 타겟인 청소년들에게 먹혀들어갔기 때문인데,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영어 이름 쓰는 해외파 멤버들은 사실 '교포'라기 보다 외국물 몇년 먹은 한국 중상층 유학생(혹은 날라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 마치 데뷔할 때는 교포 출신 같은 이미지를 풍기면서 방송활동을 했던 것이다. (모 1세대 아이돌 그룹 리더이자, 요새 예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모 군은, 사실 영어도 잘 못하지만 데뷔 초만 해도 해외파 느낌을 물씬 냈다..) 이러한 해외파 멤버 몇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거칠게 말해서) 가정 환경 좀 안좋고 학교 가는 대신 춤 추러 다니던 청소년들이 플러스 되서 이른바 1세대 아이돌 그룹이라는게 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돌 시장이 점차 커지고 이런 직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요새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도 보통 중산층 가정 출신에, 어릴적부터 정말 연예계에 가능성을 걸고 연습생부터 온 가족이 '밀어주는' 소년소녀들이 대부분이 되었다. (아이돌이 이른바 '성공 코스'의 하나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반면에, '해외파' 멤버들은 상대적으로 좀 '못 사는' 교포 출신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아이돌 음악의 트렌드 같은 것이 예전보다 미국과 시차가 없어지게 되면서 '외국물 먹은' 애들이 아닌, 정말로 본토 댄스/팝 문화를 호흡했던 '교포' 멤버들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포 사회에서 좀 사는 집안에서 이역만리 한국까지 연예인 시키려고 쉽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고, 결국 경제적으로 좀 어렵고, 어떤 '야심'을 가진 애들이 주로 한국까지 가서 연습생을 거쳐 데뷔하게 되는 것인데 박재범이 이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해외파를 자칭했지만 사실 해외파로 부르기엔 좀 민망했던 아이돌 1세대들은 한국 사회나 문화와 충돌할 일이 없었다. 이들은 단순히 대중들로부터 '해외파'라는 이미지의 소비 대상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 역시 얼마 안가서 희미해졌다.) 그러나 정말로 '해외파'인 교포 멤버들은 한국에서 오히려 어떤 문화적 갈등을 빚게 되는 일이 많다. 교포 멤버들의 돌출 발언이나 (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비춰지는) 감정 기복 같은 것이 파문을 빚는 일이 있는데, 박재범에 대한 이번 여론은 이러한 갈등이 표면화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1세대 아이돌 멤버이 마치 예전의 시트콤 <LA 아리랑>처럼 정말로 '한국인'과 다름 없으면서 외국에서 중산층적 삶을 영위한 '친해지고 싶은 이복형' 이미지였다면, 박재범 같은 진짜 '해외파'들은 LA에서 세탁소 하고 슈퍼마켓하면서 악착 같이 돈을 버는, 조금이라도 추문이 생기면 '외면하고 싶은 이복 동생'이 되는 그런 (실재적) '교포'인 것이다. 박재범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했던 '돈'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수면 위로 부상하여, 까임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을 보라. 이 순간 '외국인 노동자'라는 것은 단순히 까기 위한 말이 아닌, 정말로 박재범(혹은 외면하고 싶은 이복동생들=교포)을 '외국인'으로 상정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박재범은 '정말로' 한국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서 외면당하는 것처럼 '외국인 노동자'인 것이다. 따라서 '박재범 사건'은 박재범의 행동에 대한 판단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주 노동자', 그리고 '재미교포'들에 관한 시선을 극명히 드러내는 사례가 되는 것이다.


 2. 아이돌 팬덤 간의 연대는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박재범의 2PM 탈퇴에 격분한 2PM 팬(핫티스트, 이하 '핫티')들은 JYP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신문 광고를 내려는등, 또 하나의 팬덤 무브먼트를 일으켰다. 아이돌 팬덤 문화에 호의적인 내 입장에서 상당히 응원해주고 싶은 움직임인데, 문제는 SM과 동방신기의 불공정 계약 문제로 갈등을 벌이고 이미 팬덤 운동에 나선 동방신기 팬덤(카시오페아, 이하 카아)과 '핫티'가 갈등을 빚게 되었다는 것이다.

 상황은 이러하다. 박재범의 탈퇴 이후 핫티들은 JYP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신문광고를 위한 광고 시안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벌이게 된다. 그러면서 팬 조직과 상관 없이 일부 팬들이 카아들에게 메일을 보내 함께 신문 광고를 내고, 기사를 내자는등, '연대'와 '협조'를 부탁하게 된다. 문제는 그 와중에 핫티들이 만든 광고 시안이 얼마전 카아들이 낸 신문 광고 시안을 도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또 탄원서 양식 같은 것도 역시 도용 혐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카아들이 동방신기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문구였던 "Always Keep the Faith" 라는 문구를 핫티들이 무단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문구가 카아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카아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 큰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다. 당연히, 카아와 핫티의 연대는 무산되고 말았다.

관련 링크:

http://poplez.net/xe/?mid=guestbom&page=3&document_srl=3018868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물론 핫티들이 팬덤 간의 관계에서 상당히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을 건드리긴 했으나, 거시적 차원에서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 거대 팬덤이 공동으로 행동했다면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동방신기 팬들은 물론 기획사의 일방적인 불공정 계약에 의해 동방신기를 압박한 '동방신기' 문제와, 본인의 연습생 시절 실수로 의하여 기획사에서 자의건 타의건 탈퇴하게 된 박재범의 경우가 어떻게 같은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결국 두 사건 모두 결정적인 부분에서 같은 층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이돌 그룹의 계약 문제나 탈퇴, 혹은 해체와 같은 문제들이 전적으로 기획사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고, 여기에 팬덤의 의사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것, 이 것이 바로 두 사건의 본질인 것이다.

 팬덤이 자기 스스로의 '권리'를 선언할 수 없는 상황이, 한국 아이돌 팬덤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비극인 것이다. 동방신기 팬덤과 투피엠 팬덤은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함으로써 문제 상황을 더 좋은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투피엠 팬들의 부적절한 행동 자체는 타 팬인 내가 보았을 때도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최다 인원을 자랑하고 또 다년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방신기 팬덤, 카시오페아가 신생 팬덤의 이러한 실수를 껴안고, 함께 갈 수는 없는 것인가? 카시오페아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 중에서는 동방신기에 대한 불공정 계약이 SM만의 잘못이 아닌, 국내 연예 기획사 전반이 가지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카시오페아는 SM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2PM 팬들과 함께 JYP의 문제에도 침묵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나는 이러한 점에서, 카시오페아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상당히 아쉽게 생각되는 것이다.


2009/09/13 19:09 2009/09/13 19:09
Posted by 프리스티